스토리

Life2023-09-20

자동차 이름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② 람보르기니 편 : 자동차에 깃든 황소의 기운


아우디와 마찬가지로 람보르기니의 브랜드명 또한 창립자인 페루치오 람보르기니(Ferruccio Lamborghini)의 이름을 따왔습니다. 그렇다면 모델명은 어떨까요? 이름을 따오기는 했는데 사람이 아니라 소, 그것도 싸움소입니다. 람보르기니는 왜 모델명에 싸움소의 이름을 붙인 걸까요. 그 이유는 페루치오 람보르기니가 회사를 창립하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투우의, 투우에 의한, 투우를 위한 람보르기니

싸움소를 향한 페루치오 람보르기니의 애정은 1962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스페인에서 가장 뛰어난 싸움소를 기르는 것으로 유명한 돈 에두아르도의 목장을 방문했다가 미우라 품종 황소들의 강건한 모습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브랜드도 싸움소처럼 투지가 넘치길 바랐던 람보르기니는 자동차 회사를 창립하면서 성난 황소의 모습을 로고로 채택합니다. 또한 이후 출시하는 모델의 이름 역시 황소나 투우로부터 영감을 받아 정했습니다.


투우용 소를 길러낸 사육사, 미우라

투우로부터 영감을 받아 출시된 첫 모델은 ‘미우라’입니다.

미우라(Miura)는 1966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최초로 공개된 람보르기니의 첫 번째 스포츠카입니다. 공개 당시 독특한 엔진 배치와 역동적인 디자인으로 큰 충격을 선사하기도 했는데요. 미우라의 모델명은 페루치오 람보르기니가 직접 정했습니다. 이슬레로, 가야르도 등 투우용 소들을 길러낸 돈 안토니오 미우라라는 사육사의 이름을 따온 것이죠.

미우라는 람보르기니 ‘싸움소’ 모델명의 원조이자 람보르기니 역사상 가장 많은 업적을 남긴 차량 중 하나입니다. 혁신적인 엔진 레이아웃과 스타일링으로 영화감독들의 러브콜을 받았고, 대중에게 ‘슈퍼카=람보르기니 미우라’라는 인식을 심는 데 성공했는데요. 람보르기니 미우라의 성공으로 슈퍼카 제작이 활성화되면서 본격적인 슈퍼카 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투우사의 검 에스파다, 투우사의 적 이슬레로

다음으로 출시된 차량은 1968년에 출시된 스포츠카 쿠페인 에스파다(Espada)입니다. 에스파다는 기존 스포츠카만큼 강력한 파워를 갖춘 4인용 차량이라는 점에서 많은 인기를 끌었는데요. 에스파다의 모델명은 스페인어로 ‘검’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투우사들이 황소를 찌를 때 사용하는 검을 의미합니다.


1968년에는 또 다른 스포츠카 쿠페인 이슬레로(Islero)도 출시되었습니다. 이슬레로의 모델명은 1947년 스페인의 유명 투우사 ‘마놀레테’를 죽인 투우 소 ‘이슬레로’의 이름을 가져왔습니다.

마놀레테는 제자리에 서서 소가 최대한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소가 가까이 다가오면 상대하는 투우 방식으로 관중들의 열광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상대한 이슬레로의 시력이 나빴던 것이 그의 불운이었습니다. 상대를 눈치채지 못하고 끝까지 전진한 이슬레로를 피하지 못한 마놀레테는 오른쪽 뿔에 급소를 찔려 병원에서 사망했습니다.

위 일화를 보니 이슬레로가 남다르게 보이지 않으시나요? 실제로 이슬레로는 출시 당시 파격적인 성능과 디자인으로 타 브랜드와는 물론, 람보르기니 브랜드 안에서도 ‘이단아’로 분류되었다고 합니다.


투우 경기 명소로 유명한 자라마

다음에 소개할 모델은 1970년에 출시된 스포츠카 쿠페인 자라마(Jarama)입니다. 이슬레로의 후속기인 자라마는 멋진 디자인과 파워풀한 퍼포먼스로 사람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습니다. 자라마의 모델명은 투우 황소 사육으로 유명한 스페인 마드리드 북쪽 지명에서 가져왔습니다.

자라마는 이슬레로에 푹 빠져있던 페루치오 람보르기니의 관심을 단숨에 돌립니다. 그는 자라마를 ‘미우라와 에스파다의 완벽한 타협’으로 여기고 자마라를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모델 중 하나로 손꼽았습니다. 페루치오가 소유했던 자라마 S는 현재 이탈리아 산타가타 볼레네세에 있는 람보르기니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후로도 투우와 관련된 람보르기니 모델명은 꾸준히 출시되었습니다. 싸움소 품종인 ‘우라코(Urraco)’와 ‘잘파(Jalpa)’, 유명한 싸움소 디아블로(Diablo) 등의 이름을 딴 모델명에서 투우를 향한 람보르기니의 관심과 사랑을 입증합니다.


2000년대에도 지속되는 소에 대한 진심

현재 출시되고 있는 람보르기니 차량은 우라칸(Huracan), 우루스(Urus), 그리고 레부엘토(Revuelto)입니다.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이들 역시 투우 또는 소와 관련된 이름입니다.

2014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첫 공개된 스포츠카 쿠페 우라칸은 스페인어로 ‘허리케인’의 어원이자 1879년에 활약한 전설적인 스페인 싸움소의 이름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강력한 V10 엔진과 7단 듀얼 클러치 변속기로 3초 만에 100km/h까지 가속하는 우라칸의 모습에서 거친 콧김을 내뿜는 싸움소가 느껴집니다.


2018년 출시된 우루스는 황소의 조상인 고대 소 품종 오로크스(aurochs)의 이름을 가져왔습니다. 오로크스는 유럽과 아시아 서부, 아프리카 북부에 널리 퍼져 있었지만 개체 수가 점점 감소하다 1627년 멸종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그 이름만은 람보르기니 우루스와 함께 영원히 남게 되었습니다.


최근 출시된 람보르기니 최초의 HPEV 하이브리드카 레부엘토의 모델명은 1880년대에 바르셀로나 경기장을 휩쓴 싸움소의 이름을 가져왔습니다. ‘경기장을 휩쓸었다’는 표현은 비유가 아닌 사실 그대로인데요. 레부엘토가 무려 8번이나 관중석에 뛰어들었기 때문입니다. 들끓는 아드레날린의 화신이었던 레부엘토처럼 람보르기니 레부엘토 역시 전동화 시대를 휩쓰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할지 지켜봐야겠습니다.


‘람보르기니 차량 맞습니다’ 소 이름을 품지 않은 모델명

대다수의 람보르기니 모델명이 투우 또는 소 관련된 전통을 따르지만, 이와 무관한 이름을 지닌 모델들도 존재합니다. 그중 대표 모델이 1974년 등장한 스포츠카 쿠페, 쿤타치(Countach)입니다.

쿤타치 출시 당시, 직원들은 자동차 쇼에 출품할 쿤타치 차량을 직접 제작했는데요. 그중 잠금장치를 담당한 직원은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주 출신으로, 표준 이탈리아어가 서툴러 출신 지역의 언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는 작업하는 내내 ‘쿤타치*’를 외쳐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는데요. 한 직원이 농담으로 “자동차 이름을 쿤타치로 하면 어때요?”라고 제안하자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찬성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쿤타치는 람보르기니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쿤타치에 탑승한 후 ‘우와’ 하며 감탄했습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우와’ 정도의 감탄사


1986년에 출시된 람보르기니 최초의 SUV 모델인 LM002도 있습니다. LM은 람보르기니 군사용(Lamborghini Militaria)의 약자인데요. 1970년대 말 군사용 고성능 오프로드 차량을 개발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통해 개발되었습니다. 군사용 차량 계약이 불발되며 생산이 취소될 뻔했지만, 다행히 위기를 극복하고 출시하게 되었습니다. 스포츠카의 퍼포먼스와 안정성이 뛰어난 오프로드 기능 및 각진 디자인까지 더해져 남다른 존재감을 자랑한 LM002는 출시 후 약 6년 동안 총 300대가 생산되었습니다.


소와 투우에 남다른 애정을 드러낸 람보르기니의 다양한 일화를 보고 있으면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단순히 이름만 따온 게 아니라, 거칠고 격렬한 싸움소의 기상과 패기까지 모델에 녹여낸 덕분일 것입니다.

이어지는 시리즈인 ‘아우디 모델명’ 편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